logo

한국어

과학교육마당

오늘:
206
어제:
689
전체:
1,002,948
Since 1999/07/09

평범한 선생님은 말을 하고, 좋은 선생님은 설명을 하며, 뛰어난 선생님은 몸소 보여주고, 위대한 선생님은 영감을 준다

뇌과학의 메시지-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중앙일보

마을지기 2013.08.27 13:24 조회 수 : 3398

1.5kg 고깃덩어리의 선언 … 애쓰고, 노력하고, 그게 바로 행복

[중앙일보] 입력 2013.08.20 00:35 / 수정 2013.08.20 00:40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② 뇌과학의 메시지-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어떤 이미지를 원하나?”라는 물음에 뇌 영상을 만지던 김대식 교수는 “미친 과학자”라고 답했다. 그만큼 그는 인간의 바닥을 보고 싶어 하는 철학자이기도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문제는 뇌다. 현대 뇌과학에 따르면 슬픔도, 행복도 뇌에서 결정된다. 우리가 자아, 혹은 세계라고 믿는 것은 모두 뇌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일 수 있다. 사람의 기억조차 조작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단순히 SF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이렇듯 행복에 대한 탐구는 결국 뇌의 실체를 찾는 작업과 다름 아니다. 요즘 서점가에 뇌과학 책이 줄을 잇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런데 뇌과학은 인문학일까, 아니면 자연과학일까. 이른바 융합의 시대, 둘의 구분은 무의미할 터다.

 뇌과학자인 김대식(46·카이스트 전자공학과)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문학에 행복의 길을 묻는 기획이다. 뇌과학자로서 당신은 여기에 답할 수 있나?” 그는 “뇌과학은 자연과학인데…”라며 잠시 망설였다. 곧장 질문을 던졌다. “뇌과학에선 ‘상처’를 어떻게 보나?” 김 교수는 “뇌과학자는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세계를 일종의 전기적 신호로 본다. 다시 말해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뜻밖이었다. 그건 “세계가 정말 존재하는가” “자아가 있는가, 없는가”라는 철학의 궁극적 물음과 통하는 답이었다. 요즘 뇌과학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허물며 ‘첨단을 달리는 인문학’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슴을 겨누었던 인문학이 가슴 대신 뇌를 문제 삼는 뇌과학 앞에서 ‘헤쳐 모여’를 하고 있다. 14일 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젊고, 열정이 넘쳤다.

 -뇌과학이란 창문을 통해서 ‘상처와 치유, 행복’을 알아보려 한다. 먼저 뇌과학이 뭔가.

 “철학적 질문을 실험을 통해 짚어가는 거라 생각한다.”

 김 교수는 12세 때 독일로 갔다. 다름슈타트 공과대학에서 심리학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다. 처음에 그의 관심은 인공지능이었다. 학부생 때 몇 달씩 밤을 새며 ‘탁구 치는 로봇’을 만든 적이 있다. “공을 딱 쳤는데 30초가 지나자 로봇이 헛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고민했다. 어린 아이도 하는 걸 기계는 왜 못할까. 거꾸로 기계에게 너무 쉬운 ‘2870억×3876’같은 걸 인간은 왜 못할까. 인공지능보다 자연지능을 먼저 알아야겠다 싶었다.” 결국 그는 뇌과학으로 전공을 돌렸다.

 -뇌 안에는 무엇이 있나.

 “나도 그게 궁금했다. 그래서 수술실에 들어가 뇌를 직접 봤다. 그때 가장 신기했던 게 뭔지 아나. 신기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신기한 게 없다. 무슨 뜻인가.

 “뇌는 그냥 머리 안에 들어있는 1.5㎏짜리 고깃덩어리였다. 눈으로 보면 진짜 그런 덩어리다. 생각과 감정, 지각이 그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우리의 가설이다. 그런데 뇌를 아무리 잘라보고, 해부해 봐도 없었다. 영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자아도 없었다. 그냥 세포들이었다. 뇌가 심장에 있는 세포와 다른 점은 각각의 신경세포들이 수천 개, 수만 개의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그 신경세포들이 어마어마한 양의 소통을 하고 있다.”

 -뇌는 어떻게 세상을 알아채나.

 “우리가 꽃밭을 보고 있다. 그럼 빛이 망막으로 들어온다. 빛은 전기적 신호로 바뀐다. 그리고 뇌에 전달된다. 뇌는 형체를 알아본다. 그럼 마지막에 ‘빨간 장미’라는 것이 우리 눈 앞에 나타난다. 그런데 지금도 빨간 장미가 나타나는 그 마지막 부분은 설명이 안 된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 뇌가 작동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거다. 나는 뇌가 지능과 정신, 감정을 만든다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

 -뇌에서 감정을 만든다고 했다. 그럼 뇌과학은 ‘상처’를 뭐라고 보나.

 “나는 뇌가 자신의 주된 기능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상처’가 생긴다고 본다.”

 김 교수는 뇌과학을 고고학에 빗댔다. 2000년 된 도시를 들여다보면 길이 누더기처럼 엉망이다. 그렇지만 역사 속에서 새로운 길이 생길 때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거다. 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교뇌·중뇌·대뇌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차례대로 생겨났다고 했다.

 “인간의 뇌는 예전의 생명체들이 가졌던 뇌 구조를 대부분 가지고 있다. 가장 먼저 생겨난 게 현재 생존을 위한 뇌(교뇌)다. 눈 앞에 맛있는 게 있으면 그냥 먹는 거다. 그 다음에 생겨난 게 과거 위주의 뇌(중뇌)다. 여기에는 예전의 경험과 경험마다 매겨둔 가치가 입력된다. 그래서 좋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를 구별한다. 가장 뒤늦게 생겨난 게 대뇌피질이란 미래예측의 뇌(대뇌)다. 이게 용량도 가장 크고, 중요도도 가장 높다. 그래서 인간은 현재의 상태,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미래를 예측한다.”

 그는 대뇌피질의 미래 예측이란 주 기능이 외부의 데이터와 어긋나면 상처가 생긴다고 했다.

 -예를 들면.

 “나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누가 와서 ‘너 바보야’라고 하면 상처를 받는다. ‘나는 똑똑하다’는 예측과 ‘너 바보야’라는 외부의 데이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상처를 받는다.”

 - 그럼 이 상처를 어떻게 풀 수 있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내가 똑똑하지 않구나’하고 내가 만든 모델을 바꾸는 거다. 그럼 외부의 데이터와 일치하게 된다. 또 하나는 ‘저 사람 말이 틀렸다. 나는 똑똑하다’라며 바깥에서 들어온 데이터를 무시하는 거다.”

 -모델과 데이터, 결국 둘 중 하나를 바꾸는 건가.

 “맞다. 재미있는 건 과학에선 대부분 나의 모델을 바꾸라고 말한다. 그런데 뇌는 거꾸로 한다. 외부의 데이터를 무시하는 경향이 오히려 강하다. 왜 그럴까. 나의 모델은 수십 년에 걸쳐서 차곡차곡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 그게 바로 ‘에고(ego)’인가.

 “그렇다. 어렸을 때 우리는 데이터를 따라서 모델을 계속 바꾼다. 그걸 통해 성장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나의 모델은 안 바꾸고 외부의 데이터를 바꾸려 한다. 그게 완고해지는 거다.”

 -어떤 게 효과적인가. 모델을 바꾸는 건가, 데이터를 바꾸는 건가.

 “처음에는 나의 모델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존재성이 생긴다. 불일치 하는 데이터가 한두 번 들어와도 무시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데이터가 계속해서 들어온다고 하자. 그럼 얘기가 달라진다. 적당한 순간부터 모델을 바꾸어야 한다. 이걸 잘하지 못하면 상처를 자주 받거나, 상처를 오래 받는 사람이 된다.”

 - 그럼 나의 미래예측과 외부 데이터가 일치할 때 우리는 행복해지나.

 “상처가 치유될 때 예측과 데이터는 일치한다. 그런데 우리가 ‘행복’이라고 말할 때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만족감이다. 배 부르고, 편하게 쉴 수 있고, 내가 예측한 것과 세상의 메시지가 일치해서 돌아가는 거다. 그때는 아픔도 없고 만족스럽다. 그런데 그건 만족이지, 행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럼 행복이란 어떤 건가.

 “지금 나의 상황이 만족스럽다고 하자. 그럼에도 일치하던 세상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불일치하게 만드는 거다. 이때는 외부에 의한 수동적 불일치가 아니다. 나의 주도에 의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불일치다. 그걸 통해 새로운 레벨로 업그레이드하면서 다시 일치를 향해 가는 거다.”

 김 교수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이들은 영국에서 먹고 살만한 인생들이었다. 굳이 오르지 않아도 되는데 스스로 불일치를 만든 것이다.

 “저 산에 도전하고 싶다. 그래서 도전하고, 정상에 오르고, 만족을 느끼는 거다. 그 다음엔 또 다른 불일치를 찾아 간다.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과 나의 불일치를 만들어내고, 그걸 극복하는 절차와 과정이 행복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주도’ ‘내가 원하는 방향’ ‘스스로 만든 불일치’가 중요하다. 창의적인 행복은 변화를 동반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대식 교수의 추천서

“뇌과학자로서 당신이 서있는 마지막 낭떠러지는 어디냐”고 물었다. 김대식 교수는 “뇌과학이 마지막에 풀어야 할 것은 결국 철학적 문제다. 뇌라는 물질이 어떻게 정신이란 비물질을 만들어낼까. 그게 정말 있는 건가, 아니면 없는 건가. 정신이란 게 없다면 단순히 우리의 착각인가. 이런 물음들”이라고 답했다.

 그는 “읽으면 재미있고, 우울해지거나 행복해지는 스토리들”이라며 뜻밖에도 과학서가 아닌 소설책 세 권을 추천했다. 소설만큼 세상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계속되는 이야기(세스 노테봄 지음, 김용주 옮김, 이레)=여행작가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세스 노테봄의 대표 소설. 철학 선생님이 어린 학생을 사랑했다. 너무 어리고 아름답기에 ‘영원함’이라는 단어를 감히 쓸 정도였다. 학생은 교통사고로 무의미하게 죽는다. 먼 훗날 자신이 죽는 날, 선생은 학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픽션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민음사)=단어들의 모든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무한개의 책들을 보관한 도서관이 있다면. 그 어딘가에 존재에 대한 모든 비밀을 푸는 정답이 적혀있지 않을까. 보르헤스의 『픽션들』중 ‘바벨의 도서관’ 이야기다. 작가는 존재의 원리와 그 비밀을 묻는다.

◆만약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영어 제목 If on a Winter’s Night a Traveler, 이탈로 칼비노 지음)=국내에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한번 상상해보자. 오랜만에 너무나 재미있는 소설책 내용이 중간에 갑자기 끊긴다면.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주인공은 책 원본을 찾아 전세상을 떠다닌다. 인생은 결국 무엇일까. 이탈리아 대표작가 칼비노는 인생을 끝나지 않는 스토리로 바라본다.
 
◆김대식 교수=1967년생. 12세 때 부모를 따라 독일로 갔다. 독일 다름슈타트 공과대학에서 심리학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다. 막스플랑크 뇌연구소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MIT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 현재 카이스트 전자공학과 교수로 있다. 주로 뇌과학과 뇌공학, 사회 뇌과학, 인공지능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자료출처] 중앙일보 : http://joongang.joins.com/article/239/12380239.html?ct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