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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교육은 따뜻해야 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2015.03.23 00:03 / 수정 2015.03.23 00:05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촌지 동영상’이라는 검색어가 떴다. 학교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증거 영상? 아니면 작정하고 찍은 몰래카메라? 클릭해 보니 서울시교육청이 ‘청렴 무결점 운동’을 펼치며 제작한 캠페인이다. 주제는 분명했으나 구성은 취약했다. 의도는 충분히 알겠는데 성과는 충분하지 않았다.

 성우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우리 아이가 울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교육은 따뜻해야 합니다.” 하지만 표현방법은 따뜻하지 않았다. 화면 속 아이는 혼자 우는데 촌지를 주고받는 교사와 학부모는 크게 웃는다. 카메라에 현장이 잡히고는 화들짝 놀란다. 놀라는 배우의 표정이 누군가를 놀리는 듯하다. 어색한 상황이 복도·교실·주차장 등 장소를 달리하며 반복된다.

 영상을 본 교사들 반응은 어땠을까. 대부분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기자는 전한다. 부끄러워서? 교사들은 뭐가 부끄러웠을까? “아직도 동료 교사 중에 저런 사람이 있다니….” 그것보다는 “이런 모욕감을 느끼려고 내가 교직을 택했던가?” 이 점이 더 아프지 않았을까? 교사 출신인 내가 봐도 반성보다는 반발의 감정이 앞섰을 것 같다. 교사의 자존감을 꼭 저런 식으로 짓뭉개야 했나? 교사의 사(師)는 박사의 사(士)나 판검사의 사(事)와는 다르다.

 촌지는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다. 자식을 맡아 키워주는 선생님께 조그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게 뭐가 나쁜가? 많이 나쁘다. 봉투 속에 감사가 아니라 청탁이 담겼기에 나쁘다. 공평하지 않아서 나쁘다. “내 아이를 잘 봐주세요”가 아니라 “내 아이만 특별히 잘 봐주세요”이기에 나쁘다.

 촌지가 아름다우려면 시간이 흘러야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국어선생님(고3 때는 담임까지 맡으셨다)을 나는 평생 가슴에 안고 산다. 스승의 날마다 ‘촌지를 들고’ 찾아뵙는다. 재학 중엔 촌지를 드릴 형편이 못 됐다. 드린다고 받으실 분도 아니었다. 그분을 나는 로댕에 비유한 적이 있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나는 구리와 주석에 불과했다. 그분의 숨결과 손길이 닿아서 나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다. 고맙기 그지없는 분이다. 그분께 드리는 촌지는 그야말로 은혜의 정표다.

 당신을 만든 로댕 선생님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올 스승의 날엔 은퇴한 은사님을 찾아 촌지를 드리자. 누가 막겠는가. 그런 걸 찍은 촌지 동영상이 있다면 진짜로 세상이 따뜻해질 것이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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