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좋은 글마당

오늘:
307
어제:
334
전체:
1,611,752
Since 1999/07/09

평범한 선생님은 말을 하고, 좋은 선생님은 설명을 하며, 뛰어난 선생님은 몸소 보여주고, 위대한 선생님은 영감을 준다

할렘 고교의 기적 비결은

마을지기 2012.06.24 21:31 조회 수 : 1737

할렘 고교의 기적 비결은[중앙일보] 입력 2012.06.23 00:00 / 수정 2012.06.23 00:00
뉴욕 할렘에 자리 잡은 데모크라시 프렙 차터스쿨. 학생의 80%가 흑인, 나머지 20%는 히스패닉이다. 열 명 중 8명이 가난한 편부모 밑에서 자랐다. 7년 전 이 학교를 설립한 세스 앤드루 교장은 학생 면담 후 한 번 더 놀랐다. 맨해튼의 유일한 아이비리그(동부 명문 8개 사립대) 컬럼비아대학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었지만 거기 가본 적 있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이비리그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이란 단어조차 아이들에겐 생소했다.

 그런데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됐다. 데모크라시 프렙은 지난해 뉴욕주 공립학교 중에서 최고 성적을 냈다. 복도 천장엔 컬럼비아뿐 아니라 하버드·예일·프린스턴 등 아이비리그는 물론이고 연세대 깃발까지 빼곡히 달려 있었다. 한국의 고3에 해당하는 이 학교 예비 12학년 학생들에게 대학 진학은 더 이상 꿈같은 동화가 아니다.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를 했던 교장의 한국식 교육 실험으로 할렘의 기적을 일궈낸 고등학교 이야기다.

 학교를 취재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았다. 한국 학부모의 교육열? 올림픽 금메달감이다. 학생들의 실력? 말할 필요도 없다. 데모크라시 프렙은 ‘자립형 공립학교’다. 학생도 추첨으로 뽑는다. 할렘에서 뽑은 신입생들의 수준? 안 봐도 비디오다. 열정을 가진 교사들이 있지만 한국에도 그 정도 ‘선생님’은 많다. 그런데 한국식 교육의 기적은 왜 할렘에서만 일어난 걸까?

 안개 속을 걷듯 답답하던 머리 속이 학교를 나서는 순간 번쩍했다. 학교 담장은 두 길 높이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안에선 희망이 자라고 있지만 밖엔 절망뿐이다. 진저리처지는 가난, 오금이 저려오는 폭력. 이곳에서 탈출하게 해줄 유일한 동아줄이 바로 학교요 성적이었다. 앤드루 교장이 할렘의 아이들에게 가르친 건 단순히 한국어나 봉산탈춤·태권도가 아니다. ‘나도 대학이란 곳에 갈 수도 있겠다’는 꿈, ‘대학 가면 이 지긋지긋한 절망의 덫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었다.

 한국어를 통해 한국이란 먼 나라에서 이뤄낸 성공 신화를 자신의 꿈과 희망으로 체화(體化)한 것이다. 일단 아이들 가슴 속에 꿈과 희망이 뿌리를 내리자 기적의 나무는 스스로 쑥쑥 자랐다. 어느 틈엔가 우리 아이들은 그런 절실함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피눈물을 쏟으며 벗어나고픈 가난도, 생각만 해도 눈물 나게 하는 고향의 가난한 부모님도 이젠 추억담이 됐다. 그런 아이들에게 꿈은 대학 가서나 꾸고 ‘닥치고 수능 성적부터 올리라’니 글자가 교실 허공을 둥둥 떠다니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 아닐까.
 
 할렘의 아이들에겐 내로라하는 강남 학원도, 족집게 과외선생님도, 엄마의 치맛바람도 없었다. 다만 아이들 가슴 속에 꿈과 희망이란 씨앗만 뿌려주자 기적은 저절로 싹을 틔웠다. 하기야 기적은 늘 뭐든 환장하도록 염원하는 사람의 전리품 아니던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 잠자는 교실 마을지기 2010.09.06 1557
40 [서소문 포럼]요즘 40대 이상의 학부모들의 고민- 차라리 전두환 시절이 낫다고? 마을지기 2012.08.18 1652
39 [분수대] 꽃은 흔들리며 피는 것 안 흔들렸다고 감추는 게 과연 교육적인가-중앙일보 마을지기 2012.08.18 2394
» 할렘 고교의 기적 비결은 마을지기 2012.06.24 1737
37 가정, 처음이자 마지막 배움터 마을지기 2012.05.27 1625
36 <美교육장관 "교사존경, 한국 따라해야"> 마을지기 2012.05.08 1663
35 ‘놀토’ 연착륙, 기업도 나서라 마을지기 2012.03.10 1940
34 ‘놀토’에 놀면 안 되는 거니? 마을지기 2012.03.10 2082
33 “없이 산 애는 독해서 안 돼” 오래전 사모님 말씀 이제 와 답하고 싶은 건 마을지기 2012.03.06 3265
32 학교폭력 추방? 공문부터 추방하라 마을지기 2012.02.18 2109
31 창조적 아이디어는 지루하다 느낄 정도로 빈둥거릴 때 나온다 마을지기 2012.02.18 2140
30 경찰·검찰·법원이 너무 가까운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다 마을지기 2012.02.08 3370
29 해외 토픽에 등장할 아침 급식 마을지기 2012.02.07 2281
28 하루 3시간 쉬는 서울 초등생 `사실상 고딩' 마을지기 2012.02.05 3034
27 초등교사들의 스트레스 마을지기 2012.01.10 2837
26 美 성적나쁜 학교 예산 깎자, 교사가 점수 조작 마을지기 2012.01.06 3820
25 ‘자유’ 못 가르치는 인권조례 마을지기 2011.12.30 2390
24 우리 교육, 우리 아이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아파트 투신자살 김모군의 유서 全文 마을지기 2011.12.27 2495
23 '감사와 감동'을 가르치지 않는 무상 교육 마을지기 2011.08.18 3734
22 [삶의 향기] 나는 교사다 마을지기 2011.06.23 4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