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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산 애는 독해서 안 돼” 오래전 사모님 말씀 이제 와 답하고 싶은 건 …[중앙일보] 입력 2012.03.05 00:36 / 수정 2012.03.05 00:36
 
벌써 한참 전 이야기다. 큰 도움을 여러 차례 받은 먼 친척 어른이 계셨다. 어머니는 명절이면 나와 여동생을 깔끔히 차려입혀 그 댁으로 보냈다. 소소한 심부름이라도 하라는 뜻이었다. 저택은 늘 사람들과 선물들로 북적댔다. 때론 그 댁 언니·오빠,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럴 때면 왠지 안간힘을 쓰는 듯한 기분이 돼버렸다. 햄버거를 처음 먹은 것도 그 댁에서였다.

 대학 입학하던 해 그 댁 안주인으로부터 “큰아들 여자친구를 좀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어떤 아가씨를 원하느냐 물으니 “너무 없는 집 아이만 아니면 된다”고 했다. “그런 애들은 독하고 베풀 줄 모른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모멸감이 들었지만 일견 수긍했다. 안 그래도 그 즈음, 내 타고난 인간적 단점들이 팍팍한 현실로 인해 악화될 수 있겠다는 자각을 한 터였다. 균형 잡힌 사람이 되고자 더 노력하는 계기가 됐다.

 훗날 기자가 돼서야 내 ‘초년 고생’이 갖는 가치에 새삼 눈떴다. 뉴스의 이면, 사람의 속내를 파헤치는 것이 기자 일이다. 많이 듣고 많이 보고, 감성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다양한 위기를 경험해본 쪽이 아무래도 유리하다. 실력도 노력도 턱없이 부족한 내가 그나마 이제껏 펜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지 싶다. 비슷한 연유로 나는 교육자나 법조인 또한 가능하면 다양한 내적·외적 경험을 쌓은 이들로 채워졌으면 한다. 한데 며칠 전 신문을 보다 그만 “음…” 하는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올 국가장학금 신청 대학생 가정의 소득 수준을 분석한 기사였다. 상위 10% 가정의 자녀가 가장 많이 다니는 학교는 이화여대(43.8%), 그 다음이 서울교대(38.3%)였다.

 교대 졸업생들이 훗날 맡을 학생의 상당수는 중산층 이하 가정 자녀다. 빈부 격차 심화는 교육 현장에도 큰 도전이다. 경제적·정신적 좌절에 익숙지 않은 교사들이 이 난제를 현명히 헤쳐갈 수 있을까. 법조·정치계도 마찬가지다. 외고 출신 ‘엄친아’는 이미 사법부의 대세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모든 법적 판단의 배경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부유한 환경은 둘째 치고, 부모가 가라는 길로만 걸어온 친구가 많아 큰 걱정”이라고 했다. 정치권으로 말하자면, 그런 사법부를 가장 안정적 인재 풀로 친다. 이른바 ‘엘리트 공천’ 이슈의 핵심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의 영향력 큰 자리는 대개 시험 성적으로 그 주인을 가리는 경향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교사·법조인, 기자나 공무원을 뽑을 땐 좀 다른 잣대를 들이댔으면 한다. 그가 겪지 않아도 될 불편과 고난을 자초한 적 있는지, 그를 통해 자기 삶을 구체적·실질적으로 변화시킨 측면이 있는지. 여론 주도층에 다양한 목소리가 합류할 길을 여는 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절박한 문제다.

이나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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