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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못 가르치는 인권조례

마을지기 2011.12.30 10:46 조회 수 : 2390

‘자유’ 못 가르치는 인권조례

[중앙일보] 입력 2011년 12월 30일

문용린
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장관

학생인권조례안을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취임한 경기도와 광주광역시 그리고 서울특별시에서 마침내 그 안이 통과돼 본격적인 실행을 앞두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건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미숙한 조례안이다. 조례안이 거칠어서 제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첫째는 학생의 자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부족하다. J S 밀은 『자유론』의 절반을 자유의 가치와 중요성에, 나머지 반은 자유를 제한하고 한정해야 할 이유와 그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자유의 한계와 책임에 대한 논의를 병행해야, 실질적인 자유의 보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학생조례안들은 학생 개인의 자유에 대해서는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으나, 그 자유의 한계와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조례안에 허용된 자유가 남용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불편함과 손해를 주게 될 것이며, 그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재산이나 형사상 책임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는가. 형법이나 민법 등 상위법으로는 대다수가 미성년자인 학생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그러면 학부모가 책임을 져야 하나. 교사와 학교가 져야 하나.



 법적으로는 친권자(특히 14세 미만인 경우)가 책임을 지게 돼 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벌어진 일에 학부모가 순순히 책임을 떠안을 리 없다. 결국 학부모와 교사, 학교 사이에 끝없는 시비가 벌어질 것이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일을 벌여놓고는, 막상 책임질 일이 생기면, 말리지 않은 교사와 학교 탓을 하게 될 것이다. 교사와 학교는 학생을 막고 제지할 권한도 없어서, ‘그내두’(그냥 내버려 두는) 교사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결국 책임을 추궁당할 것이고, 이렇게 교사-학생-학부모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질 것이다. 교사와 학교의 손발은 묶어 놓고, 학생의 자유만 확대한 이 조례안의 미숙성 때문에 곧 벌어질 일들이다.



 두 번째는 학생의 자유에 대한 교육학적 성찰이 부족하다. 유사 이래 자유를 다룬 어떤 사상과 철학도 성인(成人)의 자유와 어린이, 청소년 등 미성년자의 자유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자유에는 두 가지 격률(格律)이 있다. 하나는 ‘타인의 자유와 안전을 해치는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안전을 해치는 자유도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격률이 지켜지려면 최소한의 정신적 성숙과 판단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J S 밀도 미성년자에 대한 자유 제한을 이야기했고, 우리 민법(4, 5조)도 미성년자를 정신적으로 미숙하다고 규정해, 행위무능력자로 간주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 두 가지 격률을 지키면서 자유를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학생들은 현재의 자유도 누려야 하지만, 미래에 자유를 올바르게 향유할 능력과 품성을 훈련 받고 연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학생조례안의 미숙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학생들의 현재적 자유 확대에만 집착하다가, 자유를 올바르게 행사할 능력과 품성을 기르는 교육의 본질은 외면하고 만 것이다.



 교육의 본질은 주형과 파형의 역설에 있다. 자유를 준다고 자유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규율 있는 제한을 통해서 진정한 자유를 배운다. 이 조례안들은 학생들의 자유 확대만 이야기했지, 이 자유를 옳고 바르게 훈육하고 주형시킬 교사와 학교의 자유와 책임과 열정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이 조례안이 교육의 본질을 비껴가고 있는 부분이다.



문용린 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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