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좋은 글마당

오늘:
217
어제:
290
전체:
1,621,598
Since 1999/07/09

평범한 선생님은 말을 하고, 좋은 선생님은 설명을 하며, 뛰어난 선생님은 몸소 보여주고, 위대한 선생님은 영감을 준다

‘놀토’에 놀면 안 되는 거니?

마을지기 2012.03.10 21:20 조회 수 : 2082

 ‘놀토’에 놀면 안 되는 거니?  - 양선희 중앙일보 논설위원

드디어 우리 아이들이 매주 이틀을 놀게 됐다. 학창 시절 가장 바랐던 게 ‘토요일에 학교가 쉬었으면’ 하는 거였는데, 이제라도 그런 날을 보게 돼 기쁘다. 한데 ‘놀토’를 맞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그다지 기쁜 표정이 아니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한 엄마는 “놀토를 허송세월하지 않도록 스케줄 짜느라 골치가 다 아프다”고 했다. 그의 중학생 아들은 당연하다는 듯 “학원에 다녀야죠” 한다. 강남 엄마들은 벌써부터 토요일 팀 과외 일정 짜기에 분주하다.

 대한민국 학원의 경쟁력은 이번에도 입증됐다. 이달 주5일제 수업 시작에 학교와 지역 사회는 ‘놀토’ 대비가 됐느니 안 됐느니 말이 많은데 학원가는 이미 만반의 준비가 끝난 것으로 보인다. 학원가엔 토요일 오전 강좌 스케줄이 빼곡히 잡혔고, 금요일 저녁에 입소해 일요일 밤에 퇴소하는 2박3일제 기숙학원도 등장했다. 일단 입소하면 나갈 수도 없고, 밤 12시 전에는 재우지 않는 스파르타식 학원을 표방한다.

 한편에선 학교 놀토 프로그램이 빈곤하다며 질책이 쏟아진다. 학생 참여도 적고, 지도 강사와 내용도 부실하고, 어느 학교는 그저 영화만 틀어줬고, 도서실에서 빈둥거리도록 방치해 시간낭비가 많았다는 등이다. 그런가 하면 ‘좋은 부모’들은 토요일마다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유익한 시간을 보낼까 하는 문제로 고민이 많다. 첫 놀토를 맞은 3일 에버랜드 입장객이 지난해 격주 놀토보다 30%나 늘었단다. 중1 아들을 둔 모씨는 부자간 정도 쌓고 아들의 호연지기를 길러주기 위해 토요일마다 백두대간에 오르는 산행을 아들에게 제안했단다. 나름대로 상당한 희생과 귀찮음을 각오한 것인데, 정작 아들은 “아빠,그거 꼭 해야겠어요?”라며 시큰둥하단다.

 완전 놀토를 맞은 우리 사회의 관심은 이렇게 토요일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유익하게, 시간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보낼지에 집중되고 있다. 당장 입시전쟁이 코앞인 고등학생들은 학원 프로그램에 가위눌리고,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에 놀토에도 학원으로 내몰린다. 초등학생들도 다르지 않다. 부모는 아이들을 눈에서 놓치지 않고,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하고, 다른 애들이 하는 건 다 하게 하려고 안달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휴일을 꼭 그렇게 유익하고 효율적으로 보내야만 하는지. 놀토는 말 그대로 노는 날인데, 그냥 좀 잘 놀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꼭 부모와 함께 놀아야 할 필요도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초등학생 때 부모와 놀지 않았다. 놀자고 하면 오히려 귀찮았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론 ‘과외금지령’이 있던 5공 시절 학교에 다닌 덕분에 학원 문전에도 못 가보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남아도는 시간에 가끔은 친구들과 놀고, 대부분은 방에서 뒹굴며 ‘허송세월’을 했다. 한데 그런 심심한 시간 속에서 공상도 하고, 낙서도 하고, 소설도 읽고, 글도 쓰면서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던 게 지금 나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시엔 인터넷이 없었던 게 다행이긴 했다.

 “고독은 창의성의 열쇠다.” 지난주 미국에서 열렸던 지식축제 TED콘퍼런스에서 미국 작가 수전 케인이 한 말이다. 흔히 세상은 밖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리고 외향적이 되라고 강요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바꾼 지도자와 창의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자신을 고독하게 놔둘 줄 알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끝없이 가르치고 주입한다고 그 모든 것이 아이의 지식이 되진 않는다. 아이들을 심심하게 놔두고, 무념무상으로 뛰어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창의성을 기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아이들은 무조건 안전해야 한다. 운동장·공원과 도서실 등 아이들이 노는 공간을 마련하고, 물리적 안전은 섬세하게 지키고, 기다려 주는 일이 어른들이 할 몫이다. 우리 아이들이 놀토에 부모의 간섭과 인터넷·SNS의 정보 폭주와 같은 외적 자극에서 벗어나 심심하게 뒹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1 [아침논단] "바보야, 문제는 학생들의 학습권이야!"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마을지기 2011.03.17 11244
100 [송호근 칼럼] 반갑고 심란한 무상복지 마을지기 2011.01.18 9413
99 학교 폭력 예방법... 마을지기 2009.05.09 8683
98 사교육 해결의 4가지 방향 마을지기 2009.05.19 8564
97 [기고] 한국교사 실력에 감탄하는 오바마 교육 참모 마을지기 2011.02.26 8119
96 한국의 교사들은 왜 자기효능감이 낮을까? 마을지기 2009.09.09 8112
95 [시론] 학교 자율화 부작용 최소화하라 [중앙일보] 마을지기 2009.05.12 7805
94 수석 교사 마을지기 2010.01.20 7718
93 성과 높이려면 외부 인재 영입보다 내부 출신을 리더로 키우는 게 낫다 마을지기 2010.10.27 7705
92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교육개혁을... 마을지기 2009.05.09 7685
91 '잘 가르치는 학교' 100곳 살펴보니… 아침 15분 스스로 책읽기… 점심시간엔 공연(100대 교육과정) 마을지기 2011.01.30 7670
90 [칼럼] 보편적 복지 논쟁-중앙일보 마을지기 2010.10.27 7446
89 ‘방학’에 충실한 일본의 여름방학 [중앙일보] 마을지기 2010.07.31 7418
88 [시론] 교육, 더 늦기 전에 근본으로 돌아가자 [중앙일보] 마을지기 2009.10.29 7148
87 어느 초교 여교사에게 생긴 일 마을지기 2010.07.14 7013
86 [기고] 스마트폰에 보이는 1% 교육의 벽 마을지기 2010.07.16 6963
85 [중앙시평] 대학을 생각한다 (이 글을 교육 또는 학교를 생각한다로 바꾸면 어떨까?????) 마을지기 2010.04.14 6850
84 빌 게이츠-Bill Gates on mosquitos, malaria and education 마을지기 2011.03.22 5999
83 교육의 어려움... 교육자의 고민.. '빈곤한 철학'이 만든 괴물 서남표, 그도 희생양이다!" 마을지기 2011.04.13 5928
82 [교단에서]주5일수업 전면시행에 앞서 마을지기 2011.04.21 58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