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이어 네이버도…SW 전문가 양성 과정 축소
[중앙일보] 입력 2016.10.06 02:10 수정 2016.10.0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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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 교육에 미래 달렸다 <하> 잃어버린 10년
초·중등생을 위한 무료 코딩 교육은 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키워 내는 대기업의 인재 양성 프로그램은 없어지거나 축소되는 추세다. 5일 네이버 이사회 관계자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을 목표로 2013년 문을 연 NHN넥스트인스티튜트(NHN넥스트)가 방향을 크게 바꾸기로 했다. 이 관계자는 “4월 이사회에서 ‘향후 NHN넥스트의 신입생 선발에 신중을 기한다’는 안건을 의결했는데 초기에 구상했던 방식의 신입생 선발은 지금의 3기로 종료됐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소수의 인력에게 2년간 집중 투자해 전문가를 길러 내는 방식에서 다수에게 현장형 실무교육을 전수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NHN넥스트는 이미 대폭 축소된 상태다. 2년 교육을 약속받고 입학한 1, 2기 입학생이 각 90명인 것과 달리 1년 교육과정으로 입학한 3기 신입생은 12명에 불과하다.
“10년간 1000억 투자” 약속했다가
네이버, 단기간에 성과 없자
정보소외계층 지원으로 전환 모색
앞서 삼성전자도 자사의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 프로그램인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의 정기 공채를 25년 만에 폐지한 바 있다(본지 5월 23일자 B2면). 매년 두 차례 실시하던 정기 공채를 없애고 신입생 규모를 크게 줄여 상시 선발을 진행하기로 했다.
NHN넥스트는 네이버가 “10년간 1000억원을 들여 고도의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출범한 비영리 소프트웨어 교육기관이다. NHN커넥트재단이 운영을 맡고 있다. 출범 당시 “학력도 경력도 따지지 않고 성장 가능성만 보고 뽑는다. 어떤 교육기관보다 파격적인 지원, 창의적인 커리큘럼을 제공하겠다”고 알려 큰 화제가 됐다. 실제로 NHN넥스트 신입생 중에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거나 회사를 다니다 입학하는 등 이색 경력자가 많았다.
출범 3년 만에 초기 구상을 접게 된 배경엔 재단 경영진과 NHN넥스트 교수진 간의 갈등이 있었다. 2014년 취임한 윤재승 NHN커넥트재단 이사장은 “NHN넥스트가 소수의 엘리트 인력을 양성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더 많은 이에게 소프트웨어 교육을 실시하는 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교수진은 “당초 약속대로 2년 교육 과정을 지원해 달라”고 맞섰다. 내홍 끝에 2대 이민석 학장이 사임하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네이버 관계자는 “처음 출범할 때 너무 큰 꿈을 꾼 게 NHN넥스트가 축소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파격적인 지원을 하면 NHN넥스트가 IT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성과를 당장 낼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제로 단기간에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다는 것을 경영진이 깨달은 것 같다”며 “차라리 정보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익 활동을 강화하자는 의견이 강하게 나온 걸로 안다”고 말했다.
네이버와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소프트웨어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코딩 교육 붐이 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교육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 컴퓨터교육학과 교수는 “소프트웨어 관련 인력이 일자리에서 우대를 받으면서 문과생까지 컴퓨터 학원을 다닐 정도로 코딩을 배우는 학생이 많아졌다”며 “오랜 시간 큰돈을 들여 소수 인력을 양성할 의미가 없어졌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교육 프로그램이 가지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이런 변화를 안타깝게 보는 시각도 많다.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은 “10년을 내다보고 출범했어야 할 교육기관이 2, 3년 만에 방향을 크게 바꾸는 것은 그만큼 깊이 있는 교육 철학이 없었다는 방증”이라며 “이들 기업이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더 신중하게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NHN커넥트재단 측은 “출범 초기에 구상했던 형태로 신입생을 선발하지는 않겠지만 방향을 바꿔 NHN넥스트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