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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전도사’ 슈바프 vs ‘회의론자’ 고든 가상 대담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과 물리·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적 융합이 특징”이라며 “그 복잡성을 감안하면 기존 1~3차 산업혁명과는 차원이 다른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예측했다. [로이터=뉴스1]
클라우스 슈바프(78)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WEF에서도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펴낸 저서 『클라우스 슈바프의 제4차 산업혁명』은 칩거 중인 박근혜 대통령과 차기 대권 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열독한 것으로 알려져 한국에서 화제가 됐다.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
인터넷 정보 가치, GDP로 측정 안돼
혁신 속도도 성장률로 파악 힘들어
융합 혁신, 디지털 3차 혁명과 달라
모든 산업에 엄청난 파급효과 올 것
로버트 J 고든(76)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기술 회의론자’다. 그는 저서 『The Rise and Fall of American Growth: The U.S. Standard of Living since the Civil War(미국 경제 성장의 흥망)』 등을 통해 정보통신기술(ICT)이 생각만큼 큰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음을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기에 앞서 ‘혁신의 역설’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믿는 일각에선 그의 분석을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4차 산업혁명은 너무 이상적이며 과장된 개념일까, 아니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진정한 혁신의 길일까. 저서와 기고문, 강연 및 주요 외신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본지가 두 석학의 가상 대담(對談)을 진행했다.
▶고든 교수=“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 담론 열기가 고조됐다. WEF의 기여도가 높았겠다.”
▶슈바프 회장=“과찬이다. 1~3차 산업혁명은 각각 증기기관·전기·인터넷(디지털)으로 생산의 기계화와 대량화·자동화를 가능케 했다.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과 물리·생물학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적 융합이 특징이다. 인간의 실생활과 업무 방식,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바꿔놓을 기술혁명이다. 그 복잡성을 감안하면 인류가 지금껏 경험했던 산업혁명과는 한 차원 다를 것이다.”
▶고든=“예의 분류에 따르면 3차 산업혁명은 20세기 중반 시작된 디지털혁명과 궤적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겠다. 디지털이 일정 부분 실생활 개선에 기여했음은 분명하지만 그 혁신성이 다소 과장되지 않았나 싶다. 1970년 무렵 이후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실생활 개선의 바로미터라 할 경제 성장은 생각보다 저조했다. 예컨대 1920~70년 미국 노동자의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은 연평균 2.82%였지만 1970~2014년엔 1.62%에 그쳤다. 디지털 최강국 미국에서 과거보다 외려 생산성 증가율이 떨어진 건 디지털 기술이 경제 성장에 기여한 바가 생각보다 적음을 보여준다.”
▶슈바프=“스마트폰의 경우만 봐도 ICT가 우리 실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꿨음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세계적 붐을 일으키고 있는 공유경제 플랫폼 등은 스마트폰과 가입자들, 정보 제공자, 데이터를 통해 제품·서비스의 소비 과정을 재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고든=“스마트폰은 인간 활동 중 유흥이나 통신·정보의 수집과 처리라는 제한된 영역에서만 혁신적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마찬가지다. 과거 전기나 자동차·비행기 같은 발명만큼 실생활 전반의 개선으로 인한 경제적 혜택은 가져오지 못했다. 2004~2012년만 놓고 보면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고작 1.3%였다. 또 미국 내 하위 90% 계층의 연평균 실질소득증가율이 1948~72년 2.65%에서 1972~2013년 -0.17%로 줄어들 동안 상위 10% 계층은 같은 기간 2.46%에서 1.42%로 변화하는 데 그쳤다. 부자들은 선방한 셈이다. ICT가 정보를 보다 평등하게 공유할 기회를 제공해 부(富)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시킬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슈바프=“미래는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을 공저한 마틴 울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수석 경제 논설위원은 ‘세계 경제 규모가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 전반에서 노동 생산성의 연평균 성장률 2% 달성이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고 했다. 경제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쪽을 살펴봐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 생산성 향상이 어렵다고 밝혀진 산업 부문의 GDP 대비 비중은 커지는 경향이 있지만 노동 생산성이 급성장하는 부문의 비중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통계의 함정’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4차 산업혁명이 부의 불평등 심화로 흐를 가능성은 경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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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전기 발명만큼 큰 경제효과 없어 … 더 강한 혁신 필요”
로버트 고든 교수디지털 기술 발전, 혁신성 과장돼
생산성 증가율은 도리어 낮아져
1970년 이후 사실상 혁신 정체기
AI ‘21세기의 전기’ 등극할지 주목
로버트 J 고든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에도 생산성 증가율은 떨어지는 등 기대만큼 경제적 효과가 창출되지 못했다”며 “1970년 무렵 이후 혁신은 정체됐으며 계속 이 수준에 머물면 향후 경제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 TED.com]
▶고든=“어제는 내일을 바라보는 거울일 수밖에 없다(E H 카). 전기는 밤에도 생산활동이 가능케 했다. 전기세탁기와 냉장고는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켰다. 자동차는 도시화로, 비행기는 전 세계적인 비즈니스 기회 제공으로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다. 이에 비해 TV나 인터넷·스마트폰은 작은 혁신에 불과하다. 지금은 ‘혁신의 정체기’다. 1970년 이후 사실상 혁신이 정체됐다고 봐야 한다.”
▶슈바프=“『제2의 기계 시대』의 저자 에릭 브리뇰프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무료 정보의 크나큰 가치가 숫자로 측정되지 않으며, GDP 통계 같은 데서도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여기에도 동의한다. GDP 측정은 종종 무형의 자산에 대한 투자를 과소평가하는 오류로 이어지곤 한다. 교수께서 함께 논쟁을 벌였던 조엘 모키르 노스웨스턴대 교수 역시 ‘기술의 혁신 속도는 GDP 성장률 추이만으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했다. 혁신의 가속도와 파괴의 속도는 이해하기도,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무한한 가능성에 초점을 둬야 한다.”
▶고든=“미국 ICT 가격지수(price index)의 연간 변동률을 보면 73년 -1%대에서 2000년 무렵까지는 점차 낮아져 -13%대가 되기도 했다. PC 보급의 활성화로 관련 가격지수도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약 13년간은 급격히 반등해 2013년엔 40년 전인 73년 수준으로 회귀해 버렸다. 가격지수는 실생활 개선의 정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3차 산업혁명의 파급 효과가 과장된 건 아닐까. ICT 기반의 4차 산업혁명이 얼마나 다를지 궁금하다.”
▶슈바프=“스마트폰이 처음 나온 2007년 6월 이전엔 어떤 부유층도 그걸 가질 수 없었다. 그러니 그 가격은 무한했다고 봐야 한다. 무한했던 가격에서 정해진 가격으로 내려가는 건 가격지수에 반영되지 않는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은 ICT나 제조 어느 한 분야만의 혁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각종 기술의 융합·조화에 기반을 두는 혁신이다. 디지털화만을 의미했던 3차 산업혁명과는 다르다. ICT와 제조·서비스업이 결합된 온라인 투 오프라인(O2O) 서비스나 웨어러블 기기가 예다. 새로운 기술 플랫폼은 진입장벽을 낮춰 개인이 부를 창출하도록 하고 근로자의 삶을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유전공학처럼 4차 산업혁명의 토대가 될 신기술이 더 많은 실생활 개선과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을 이끌어내고, 모든 산업 분야에서 엄청난 파급 효과를 몰고 올 것이란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고든=“결국 관건은 전기 등처럼 경제성장까지 주도할 만한 큰 혁신의 재등장이다. 오늘날 인류가 맞닥뜨린 인구 문제나 부의 불평등은 경제 성장률을 반 토막 낼 만큼 강한 영향력을 지녔다. 이를 상쇄하려면 강한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이 지금 수준에 머무른다면 향후 150년간 경제성장이 반으로 더 줄어들 것이다. AI 같은 신기술이 세간의 기대처럼 ‘21세기의 전기’로 등극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슈바프=“AI 등을 통한 강한 혁신이 미래에 ‘아이언맨’ 같은 증강인간을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성 보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다. 전 세계에 르네상스를 불러올 대전환기는 이미 시작됐다. 미래를 기대해 보자.”
「1938년 독일 출생
스위스 연방공과대 공학 박사
프리부르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전 유엔개발계획(UNDP) 부의장
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
」
「1940년 미국 출생
미국 MIT 대학원 경제학 박사
전 전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전 미국 보스킨위원회 멤버
현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적게 일하고 더 잘살게 될 것” vs “부의 불평등 더 심화될 것”
[중앙일보] 입력 2017.01.27 01:00 수정 2017.01.27 01:00
4차 산업혁명은 각종 신기술뿐 아니라 수많은 담론도 양산하고 있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강연과 저서,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담론에 뛰어들어 ‘별들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 MIT의 에릭 브리뇰프슨 교수와 앤드루 맥아피 디지털경제연구소 공동창립자는 낙관론자다. 공저한 『제2의 기계 시대』에서 “과거 증기기관을 통한 1차 산업혁명이 인류를 고된 육체노동에서 해방시켰듯 이젠 디지털기술이 정신노동을 대체하는 시대가 왔다”고 했다. 이들은 미래의 후손들이 4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더 적은 시간 일하면서 더 잘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왼쪽부터 에릭 브리뇰프슨, 레이 커즈와일, 누리엘 루비니, 피오나 모턴.
조엘 모키르 노스웨스턴대 교수도 " 원리 이해를 위한 기초과학에 기반을 둔 오늘날의 기술 혁신은 지금까지의 어떤 혁신과도 질적으로 다르며,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 문제를 해결해 줄 열쇠”라고 했다. 괴짜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는 낙관론자를 넘어 신봉론자에 가깝다. 그는 『특이점이 온다』에서 “놀라운 기술 혁신 속도를 감안하면 2045년께 인공지능(AI)이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올 것”으로 예측했다. 이들 모두는 신기술이 강한 혁신의 산물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확신한다.
신중론자 혹은 비판론자들은 이 같은 얘기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전과 비교할 때 기술 혁신 수준에 물음표가 붙는다는 것이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기술 혁신이 기대한 만큼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피오나 모턴 예일대 교수도 “혁신에 몰두하는 기업도 생산성 유지엔 어려움을 겪는다”며 “초기 혁신으로 일단 지배적인 기업이 되고 나면 혁신에 소홀해져도 고객이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혁신 기업의 생산성이 점차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낙관론 이면에서 신중·비판론이 제기되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과대평가가 미래 사회를 어둡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예상되는 어려움에 대한 과소평가로 이어지면서 경제·사회적 실패를 유발할 수 있어서다. 정보의 비대칭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공로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교수는 공저 『4차 산업혁명의 충격』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미래에는 일반적인 노동·자본 대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혁신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치 있고 희소한 자원’이 될 것이다. 일과 보수는 더 불평등하게 분배될 수 있다.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이루려면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부의 불평등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으니 인재들의 창의적 역량을 상향 평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미래 지향적인 교육 등으로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부 낙관론자(브리뇰프슨, 맥아피)도 이와 의견을 같이한다.
브리뇰프슨·커즈와일 낙관론
“기술 혁신이 저성장 해결할 열쇠
디지털기술이 정신노동 대체할 것”
루비니·스펜스 신중론
“기술 혁신, 생산성 향상 연결 안돼”
“노동자 대신 혁신가 몸값만 오를 것”
‘혁신의 역설’을 문제 제기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지난달 보도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WSJ는 기사에서 스탠퍼드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지금보다 많은 수의 연구자가 과거와 동등하게 경제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만한 혁신을 창출해야 한다. 미래 사회가 지금까지와 같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려면 (이제부터) 연구개발(R&D)에 인력과 자원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고 전했다. 결국 기술 혁신의 현 수준을 과대평가하면서 안주하기보다는 지금보다 ‘강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계속 주문함으로써 세계 각국이 보다 발전적인 미래 전략을 세우게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시선이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