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재미도 의미도 없는 지옥을 팔 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2016.07.31 20:32 수정 2016.07.31 23:59 |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고속도로는 막히고, 인천공항은 연일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아내와 8개월짜리 큰아들과 함께 멕시코 캉쿤으로 여행을 갔었다. 내 인생에 가장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그 당시 순박했던 멕시코인들은 관광객보다 더 재미있게 놀았다. 식당에서도 가만히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10여 분마다 기차놀이가 돌아오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이 모든 것을 가게주인과 종업원이 시작하고 주도했다. 가까운 섬에 배를 타고 가서 저녁 식사와 음주가무를 즐기고 돌아오는 크루즈 투어에서는 선원들이 관광객보다 더 취한 것 같았고, 그들의 주도로 모든 관광객이 갑판에서 춤을 출 때는 배가 좌우로 요동쳤다. 선장을 비롯한 모든 선원이 갑판에서 함께 춤추고 있는 것 같았는데, 도대체 그 배는 누가 조종하고 있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한마디로 자기들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반면에 가장 의미 있었던 여행은 자가용을 직접 몰고 간 제주도 가족여행이었다. 전남 장흥에서 제주 성산항으로 가는 쾌속선을 타고 갔다. 당시 인기 있었던 방송인 1박2일에서 강호동 일행이 배를 타고 제주도 가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가 보는 여행이었다. 고생스럽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아이들은 내내 ‘바로 여기야!’를 연신 외치며 좋아했다. 사실 온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 렌터카를 이용하는 비용에 비해 싸다는 현실적인 요인이 가장 중요했지만, 스스로 그렇게 비참해지기 싫어서 1박2일 코스를 따라간다는 의미를 더욱 강조했다. 아이들이 왜 비행기를 안 타느냐고 물을 때는 이런 여행이 얼마나 의미 있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여행은 본질은 재미와 의미다. 과거의 노동에 종속됐던 산업화 시대에 여행은 노동에 종속된 휴식이었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다시 일할 수 있게 만드는 재충전에 머물러 있었다. 과거의 선진국도 그랬고, 이미 끝나가는 산업화 시대를 붙잡고 못 놓고 있는 한국은 아직도 그렇다. 하지만 이미 여행은 휴식을 넘어 재미를 거쳐 의미로 가고 있다. 재미는 긍정적 경험이고 의미는 경험을 초월하는 가치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편안함을 넘어 새롭고 흥분되는 경험을 찾게 되고 위험하고 힘들어도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이제 더 편안한 호텔보다는 현지 주민의 삶을 느끼고 싶어 에어비앤비(airbnb)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속초로 사람들이 몰려간 것은 가상의 캐릭터 잡기 게임 ‘포켓몬 고(GO)’ 때문이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고생하며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괴물을 잡으러 다니고 있다. 청담동 연예기획사 앞에서 사진을 찍고 며칠을 쭈그리고 앉아 밤을 새우는 외국인을 보면, 이 멀리까지 와서 뭐하는 짓인가 싶다. 그들이 원하는 건 절대 편안함이 아니다. 바로 재미를 넘어 의미다. 어찌 보면 인간이 더 인간다워지고 있는 거다. 뭔가 새로운 경험을 위해 어딘가로 떠나고, 그리고 거기서 의미를 찾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을 거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관심은 그저 돈벌이다. 대통령도, 정부도, 국민도 경제적 이득만 얘기한다. 그래서 한국의 정책에는 관광산업만 있지 실제 여행하는 사람의 재미와 의미는 실종되어 있다. 여행하는 사람은 돈벌이 타깃이지 여행의 주체가 아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한국 사람들, 특히 산업화를 이끌어온 한국의 리더들은 재미를 모른다. 오히려 그들에게 노는 건 죄악이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 ‘놀고 있네’라고 비아냥거린다. 한국인의 여행에서는 아직 경험보다는 ‘가봤어?’만이 중요하다. 여름에 휴가를 안 가면 자기만 손해 본다는 생각에 그냥 어디든 가야 한다. 이왕이면 폼 나게 외국으로. 미국에서 렌터카를 빌리면 며칠 만에 수천㎞를 달리는 사람들은 한국인이다. 7시간을 운전하고 가서 20분 동안 빨리 사진 찍고 또 몇 시간을 달린다. 왜? 나중에 누가 ‘거긴 가봤어’라는 질문이 제일 무서워서다. 가는 동안의 경험, 그걸 보고 뭘 느꼈나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한국의 축제와 관광지에 가면 모든 주민은 다 돈벌이에 매달려 있다. 주민은 아무도 즐기지 않는다. 그러니 즐길 것도 없는데 처음 온 관광객이 알아서 즐겨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얼마 전 관광 관련 정부대책회의를 갔을 때 깜짝 놀랐다. 또 여행이 아닌 관광산업이 주제라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다. 20여 명의 전문가가 모여 회의 시작을 기다리는데 한 공무원이 외쳤다. “차관님 들어오십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들은 아직도 산업화 이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권위주의적 인식과 행동으로 여행의 재미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여행 가서 제일 기분 나쁠 땐 돈만 벌려고 눈이 벌게진 장사치를 만났을 때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