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한마디로 ‘어떻게 살 건가’를 다룬다. 삶의 존재 이유를 천착한다. 21일 서강대 최진석(철학) 교수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문(文)이란 글자는 원래 ‘무늬’란 뜻이다. 그럼 ‘인문(人文)’은 뭔가. 사람이 그리는 무늬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무늬를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남의 무늬만 따라서 그린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한 삶일까”라고 반문했다. 그에게 삶의 무늬와 행복을 물었다.
최 교수는 중국 베이징대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에서 철학이나 문화 관련 일을 할 때 돈이 없어서 못한 적은 없다. 콘텐트만 괜찮으면 돈은 마구 몰려들었다. 한국은 다르다. 문화나 철학 쪽은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할 때가 많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중국은 아직도 투박하고, 한국은 훨씬 세련됐다. 그런데도 왜 그럴까”라며 말문을 열였다.
- 왜 그런가.
“곰곰 생각해보니 중국은 제국을 운영해 본 나라더라. 그들은 무엇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인가를 알고 있다.”
- 무엇이 세계를 움직이나.
“문화와 철학이 세계를 움직인다. 제국을 운영했던 역사적 경험이 있는 중국인들은 DNA(유전자)를 통해 그걸 알더라. 예술과 철학이 현실과 맞물려서 작동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다르다.”
- 어떤 면에서 그런가.
“예술·철학·문화를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고급스런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태도가 아직 남아 있다.”
- 요즘 인문학 열풍이 거세지 않나.
“그게 뭘 뜻하겠나. 인문학적 시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더 이상 생존이 어렵다는 얘기다. 그건 위기의식의 표현이다.”
최 교수는 역사를 통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는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주자학을 누가 더 잘 지키고 있느냐를 따졌다.” ‘남의 기준’만 지켰다는 지적이다.
“정작 주자학을 만든 중국은 달랐다. 송나라·원나라·명나라를 거치면서 시대적 조건이 바뀔 때마다 그들의 철학도 계속 변했다. 왜 그랬을까. 철학이 현실과 함께 호흡했기 때문이다.”
- 조선후기 실학운동이 있지 않나.
“그게 국가적 동력으로 성장하지 못한 게 아쉽다. 실학이 주류가 되려면, 그걸 뒷받침하는 정치적 세력의 성장이 필요했다. 그러나 좌절됐다. 중화 사대주의에 빠진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컸다. 이게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 일러준다.”
- 그런 게 무엇인가.
“인문적 주체로 독립하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인문적 주체가 아니어도 먹고 살 형편은 됐다.”
최 교수는 ‘인문적 주체’란 말에 힘을 실었다. “인문적 주체성이 있는 나라는 새로운 걸 창조한다. 지금껏 우리는 그런 나라가 만들어 놓은 걸 모방하고, 따라잡으며 먹고 살았다. 이런 방식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이걸 돌파하지 못하면 한국은 여기서 멈추고 만다. 멈춤은 국제사회에서 곧 후퇴를 의미한다.”
나라와 기업뿐만 아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식이나 이론이 뭔가. 그건 사건이 남긴 똥이다.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석하며 다른 사람이 싸놓은 똥일 뿐이다. 지식과 이론을 배우는 건 결국 남의 똥을 헤집는 일이다. 내가 왜 남의 똥을 헤집는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비유가 재미있다. 왜 남의 똥을 헤집나,
“언젠가 나도 내 똥 한번 시원하게 싸보려는 거다. 장자의 똥을 헤집고, 공자의 똥을 헤집고, 칸트의 똥, 마르크스의 똥을 헤집는 이유가 뭔가. 너는 똥 쌀 때 행복했겠지만, 나는 네 똥 헤집을 때 너만큼 행복하지 않았다는 거다. 나도 당신들처럼 자신의 똥을 싸보고 싶다는 얘기다.”
그가 세상을 보는 첫 단추는 “현실은 끊임없이 변한다”였다. 그런 현실에 대한 해석이 지식과 이론, 그리고 이념이라고 했다. “지식이나 이념을 숭배하는 건 어리석다. 현실은 끝없이 변한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지식과 이념도 ‘흘러간 사건의 똥’에 불과하다. 그걸 붙들고 숭배하면 ‘인문학적 노예’가 되고 만다. 현실은 이미 변했는데 옛날의 프레임(틀)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기 때문이다.”
- 최근 역사 교과서 논쟁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좌파는 ‘민족’을 주어로, 우파는 ‘국가’를 주어로 역사를 바라본다. 문제는 좌파도 1970년대의 민족 인식, 우파도 70년대의 국가 인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그 틀로 어떻게 2013년을 해석하겠나. 지금은 한국 기업이 미국에도 세금을 내고, 유럽과 중국에도 세금을 낸다. 또 우리는 이미 다민족 사회로 진입했다. 2013년의 국가, 2013년의 민족을 가지고 다시 논쟁해야 한다.”
그는 민주화를 예로 들었다.
“1970년대의 민주화와 2013년의 민주화를 같은 개념으로 쓰면 되겠나. 이론이나 이념에 갇히면 현실의 변화를 보는 눈이 취약해진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한다. 좌파와 우파의 논쟁이 접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이미 흘러간 이론과 이념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 ‘남의 똥’에 갇히지 않으려면.
“인문적 시각을 갖추어야 한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책 많이 읽고, 철학자들의 말을 외워서 앵무새처럼 떠들고, 지식 많이 쌓는 게 인문적 시각이라 본다. 그게 아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인문적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인문적으로 사고하는 거다. 남의 똥 헤집는 게 아니라 내 똥을 싸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게 인문적 시각이다.”
최 교수는 ‘간 박사’로 알려진 김정용(전 서울대 의대 교수) 박사 얘기를 꺼낸다. 김 박사는 세계 최초로 B형 간염 백신을 개발했다. 정작 우리 보건 당국에선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세계 최초라 인증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간염 백신이 나온 후에야 승인이 떨어졌다. 비로소 인증 기준이 생겼던 거다.
최 교수는 “세계 최초로 간염 백신을 개발하고도 상용화하지 못 했다. 결국 세계시장을 놓쳤다. 이게 독립적 주체성이 없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 세계 최초가 돼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그렇다. 남들이 만든 잣대를 항상 따라갔으니까. 그 잣대를 추월하자 스스로 당황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스스로 삶의 기준이 되는 법을 몰랐던 거다. 일류는 기준을 생산하고, 이류는 기준을 수입한다. 인문적 주체는 기준을 생산하는 용기를 가진 자다.”
최 교수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내가 ‘우리’속으로 용해되면 절대 안 된다. 내가 ‘나’로 남아 있어야 한다. 수업 중에 학생들이 질문할 때 이렇게 말한다. ‘이게 맞는 질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최 교수는 잠시 웃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거다. 질문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나의 관심과 호기심을 나타내면 그걸로 100점이다. 자신의 욕망을 좇으며 살아야 한다.”
- 자기 욕망이라면.
“스티브 잡스가 누굴 위해 살았나. 미국을 위해 살았나. 가족을 위해 살았나. 잡스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았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았다.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다. 인류를 끌고 가는 모든 창의적 활동은 자기 욕망에서 나왔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 그게 자기 욕망이다. 그걸 찾아야 한다.”
- 어떻게 찾나. 이기적인 건 아닌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해야 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고정돼 있다. 반면 ‘하고 싶은 것’은 움직인다. 역동적이다. 세계는 끝없이 변한다. 둘 중 어느 쪽이 세계의 변화와 맞물려서 돌아갈 가능성이 크겠나. 삶을 명사(名詞)로 살지 말고 동사(動詞)로 살아야 한다. 고정된 프레임을 통해 세계를 보는 사람은 세계가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
최 교수에게 행복도 결국 같은 의미였다.
“인간은 자기를 실현할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 왜 그런가. 내가 ‘나’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기로 사는 것, 삶에서 그 이상의 가치가 어디에 있겠는가.”
최진석 교수의 추천서 3권
◆철학자와 늑대(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추수밭)=이성과 지성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삶의 역동성과 야성을 잃게 한다. 이 책은 이론의 구조물로 남은 철학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걸 통해 인간이 도달하고자 했던 궁극의 지점을 일깨워 준다. 삶에서 이미 정해진 것들을 핥는 개가 아니라, 자신의 힘과 의지를 발산하는 늑대가 되는 길을 보여준다.
◆마음 혁명(김형효 지음, 살림)=현대철학자인 저자는 동서고금의 사상을 소화한 후, 자신만의 빛을 보여준다. 절대 진리의 설교보다 고요히 본성으로 귀향하는 사유를 더 중시한다. 이런 저자의 주장을 통해 우리는 절대 진리가 해체되는 시절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욕망의 자발성이 내뿜는 숨결에 대해 깊이 되묻게 된다.
◆빅 데이터가 만드는 세상: 데이터는 알고 있다(빅토르 마이어 쇤버거·케네스 쿠키어 지음, 이지연 옮김, 21세기북스)=구체적인 세계의 변화 내용을 담지 못하는 사고가 과연 튼실할까. 우리의 경제 상황과 사회, 그리고 삶을 급속도로 변화시키는 신무기는 빅 데이터다. 빅 데이터의 실용적 기능이 확대되면서 진리를 생산하는 형식이나 세계관 자체가 급변하고 있다. 다른 세계, 다른 인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