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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도, 사마천도 울었다 … 세상의 '平'을 위하여

[중앙일보] 입력 2013.10.08 00:49 / 수정 2013.10.08 00:56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⑧ 역사의 울림 -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쓴 편지에 자녀 교육법이 담겨 있다. 네가 관심이 있으면 스스로 연구를 해서 그 분야의 최고가 될 때까지 한번 해보라는 거였다. 오늘 날에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얼굴에 때가 끼면 씻어야 한다. 그래서 거울이 필요하다.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도 마찬가지다. 너와 나의 삶에, 사회 시스템에, 국가의 방향에 때가 끼면 거울을 봐야 한다.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만난 이덕일(52) 소장은 “그 거울이 바로 역사다”고 말했다. 그에게 역사 속에서 피고 졌던 숱한 인물의 삶과 울음, 그리고 행복을 물었다.

 - 우리는 왜 역사를 공부하나.

 “사람들은 역사학을 흘러간 것, 과거에 대한 학문으로 알고 있다. 그건 오해다. 역사학은 앞으로 다가올 것, 미래에 관한 학문이다. 역사학은 미래학이다.”

 - 뜻밖이다. 왜 미래학인가.

 “과거는 선택할 수가 없다. 이미 지나갔으니까. 미래는 선택할 수가 있다. 아직 안 왔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선택의 상황에 설 때마다 주저하고 갈등한다. 이걸 선택하면 어떤 결과가 닥칠지, 저걸 선택하면 또 어떨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결과가 보인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가 있다.”

 - 역사를 보면 왜 결과가 보이나.

 “역사 속에는 기승전결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그리고 선택, 그에 따른 결과까지 다 있다. 그러니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국가에게도 얼마나 좋은 참고서인가.”

 - 역사는 현실과 미래를 비추는 거울인가.

 “그렇다. 그래서 역사서에다 ‘거울 감(鑑)’자를 쓰는 거다. 『동국통감』(東國通鑑·단군 조선부터 고려까지 다룬 조선 전기의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중국 북송의 역사서)를 만들 때도 다 ‘거울 감’자를 썼다.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거다. 그게 역사서다.”

 이 소장은 기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물음을 던졌다. “왜 우리가 이렇게 마주 보며 앉아 있나? 인터뷰를 하겠다고 나를 선택한 거다. 그래서 미래가 현실이 된 거다.” 미래에 대한 선택은 현실이 되고, 다시 과거가 된다는 설명이었다. 과거가 된 역사는 다시 미래를 선택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과거-미래-현재-과거는 이렇게 서로 맞물리며 돌아간다.

 - 역사 속에는 숱한 거울이 있다. 그런데도 현실 속 정치인이나 대통령들은 과오를 범한다. 그건 왜 그런가.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잡으면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역사 속에서 엎어진 사례는 많다. 엎어진 길 위에 또 엎어지고, 그 위에 또 엎어지는 거다. 그걸 전철(前轍)이라고 부른다. 그게 바로 역사의 수레바퀴다. 앞서 간 수레가 엎어지는 걸 빤히 보면서도 사람들은 그 길로 간다.”

 그럼 역사 속에서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 했던 인물은 누구일까. 이 소장은 먼저 조선시대 정조를 꼽았다.

 “정조가 평가받기 시작한 건 20년이 채 안 된다. 예전에는 ‘영·정조 시대’라고 하면서 영조의 부속 인물처럼 나왔다. 그런데 요즘은 정조의 독자성이 부각되고, 영조는 과대 포장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인재를 널리 등용하려던 영조의 탕평책은 형식적이었다. 정조는 정말 조선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했던 인물이다.”

 - 정조가 왜 대단한가.

 “그는 슬픈 인물이다. 아버지(사도세자)를 죽인 노론 세력과 정치를 해야 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국회 의석 300석 중 250석 이상이 노론이었다. 기득권 세력이자 아버지를 죽인 정당이었다. 그래도 정조는 정치를 파행으로 몰아가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를 했다. 초인적인 노력이었다. 정조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왕이라고 시간이 남아도는 건 아니었다. 새벽에 일어나 대비에게 문안하고, 아침에 경연(經筵)하는 조강(朝講), 그 사이에 정사를 보고, 낮에 하는 주강(晝講), 저녁에는 석강(夕講), 그리고 밤에 야강을 했다. 공부도 하고 정책토론도 하는 자리였다. 지방관이 올라오면 만나고, 상소도 봐야 했다. 그리고 오후 9시부터 2시간 동안 비로소 책 읽는 시간이 생겼다. 그럼에도 정조의 독서량은 어마어마했다.

 “임금의 하루를 기록하는 승지는 궐문이 열리기 전, 새벽에 출근했다. 정조가 새벽 출근하는 승지에게 이런 말을 한 기록이 있다. ‘너희가 힘들다고 하는데, 나만큼이나 힘들겠느냐.’”

 - 정조가 그린 조선은 어떤 나라였나.

 “정조도 유학자였다. 유학적 이상사회의 기본은 경제적 평등이다. 이게 없으면 사기라는 걸 다 알지 않나. 그렇다고 공산주의처럼 다 같이 생산하고, 다 같이 나누자는 식은 아니다. 최소한 한 가정이 정상적인 생활을 자발적으로 유지할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고 봤다. 정조가 수원 화성을 만들 때 범람하던 개천을 막아서 큰 저수지를 만들고, 그 아래 대규모 농장을 만들어 수원 백성에게 나누어 줬다. 백성의 중산층화를 지향했던 거다. 중산층이 된 백성이 광범위하게 깔려 있어야 사회가 안정된다고 봤다.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다.”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다면 조선이 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소장은 “그럼 정약용이나 이가환 같은 시대의 천재들이 판서나 정승급으로 성장했을 거다. 정조의 아들(순조)이 수렴청정을 안 받았을 거고, 임금의 군대인 장용영도 해체되지 않았을 거다. 그럼 조선의 국방이 더 강해졌을 거다. 정약용 같은 인물이 계속 정조의 개혁 정책을 추진해 나갔더라면 조선은 달라졌을 거다”며 아쉬워했다.

 역사에는 시대적 흐름이 있다. 그 흐름과 호흡을 주고 받는 건 중요하다. 그래야 낙오되지 않는다. “동양 최초의 역사서가 공자의 『춘추』다. 공자가 그걸 쓴 이유가 있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어서다. 공자가 『춘추』를 쓰자 천하의 난신적자(亂臣賊子·나라를 해치는 신하와 부모를 해치는 아들)들이 비로소 두려움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 소장은 동양적 사고에서 인문 정신의 최고봉은 ‘불평지명(不平之鳴)’이라고 했다.

 - 불평지명, 무슨 뜻인가.

 “세상이 평(平)의 세상이 돼야 하는데 아닌 거다. 그래서 울음을 우는 거다. 그게 불평지명이다. 개인을 위해서 우는 작은 울음이 아니고, 천하를 위해서 우는 큰 울음이다. 그게 역사학이고 인문학이다.”

 - 그럼 불평지명은 ‘불평(不平)’을 위한 게 아니라 ‘평(平)’을 위한 건가.

 “그렇다. 『춘추』를 쓴 공자도, 『사기』를 쓴 사마천도 불평지명을 했다. 결국 세상의 평(平)을 위해서다.”

 - 개인의 삶도 하나의 역사다. 거기에도 불평지명이 있나.

 “물론이다. 나라의 역사만 역사가 아니다. 개인에게도 역사가 있고, 집안에도 역사가 있다. 나라의 역사가 어긋날 수 있듯이, 개인의 역사도 어긋날 수 있다.”

 - 어긋나면 어떡해야 하나.

 “공자는 성인(聖人)이란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유학은 인간의 학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런데 실수가 되풀이되면 습관이 된다. 그럼 개인의 역사도 비뚤어지기 시작한다. 그때는 울어야 한다. 뼈저린 자기 반성을 통해 스스로 울어야 한다. 개인의 삶, 개인의 역사에도 불평지명이 있다. 통렬한 자기반성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 속에는 자신을 향해서도, 사회를 향해서도 그렇게 울었던 사람들이 있다. 이 소장은 그들을 ‘역사를 연구하다가 눈이 마주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성호 이익(1681~1763), 이익의 종손 이가환(1742~1801), 다산 정약용(1762~1836), 다산의 형 정약전(1758~1816), 하곡 정제두(1649~1736), 연암 박지원(1737~1805) 등을 꼽았다. 당대의 천재들이라고 했다.

 “밥 먹고 사는 건 정말 중요하다. 맹자도 ‘유항산 유항심(有恒産 有恒心)’이라고 했다. 먹을 게 있어야 마음이 유지된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돈이나 권력을 삶의 1차 목표로 삼는 건 다르다. 그게 과연 행복일까.”

 - 역사가로서 당신의 행복은 뭔가.

 “길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추구하는 거다. 좌파다, 우파다가 아니다. 우리 사회공동체 전체를 위해 올바른 길이다. 그리고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비판적 견지를 유지하며 불평지명을 하는 거다.”

 - 역사 속의 인물들은 무엇이 행복이라고 했나.

 “그들의 삶이 말하고 있다. 돈과 권력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할 때 인간은 행복하다고 말이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덕일=1961년 충남 아산 출생. 학창 시절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읽고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숭실대에서 역사학으로 석·박사를 받았다. 책과 강연, 그리고 연구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역사를 지향해왔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다. 객관적 사료에 근거해 역사의 미스터리를 풀어왔다. 저서 『왕과 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조선 왕을 말하다』 『근대를 말하다』 『윤휴와 침묵의 제국』 등.

이덕일 소장의 추천서

이덕일 소장은 “역사에서 얻는 위로는 본질적”이라고 말했다. “역사 속에는 길을 찾던 인물들이 있다. 공부를 하다 보면 그들과 눈이 마주친다. 그들의 삶은 내게 위로를 준다. 그런데 약간은 슬픈 위로다. 그들의 개인적 삶이 너무 고달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역사는 결국 말해주더라. 그들의 가치가 옳았음을 말이다.”

◆조선노비들, 천하지만 특별한(김종성 지음, 역사의 아침)=인문학은 시대의 주류에게 주목하면서, 동시에 그 사회의 가장 하층민들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한다. 이게 없다면 관념의 유희로 전락하고 만다. 이 책은 인간이되 물건으로 취급받았던 조선의 노비들에게 인생과 세상은 무엇이었나를 생각하게 한다.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정창권 옮김, 사계절)=미암(眉巖) 유희춘(1513~77)이 쓴 『미암일기』를 풀었다. 그는 사화(士禍)에 연루돼 20여 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이때의 공부가 자산이 돼 해배(解配) 후 크게 성장했다. 사대부 부부의 일상 속 속살에서 이들이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하곡 정제두(김교빈 지음, 예문서원)=주자학 유일사상 사회였던 조선 후기에 스스로 양명학의 길을 걸어간 하곡(霞谷) 정제두(1649~1736). 그의 삶과 사상을 11명의 학자가 다양한 각도로 조명했다. 일반 독자가 읽기에 조금 어려운 논문들이다. 주류의 길을 버리고 스스로 이단의 길을 걸어갔던 한 학자의 일생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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